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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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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408_farmer.jpg (95.5 KB), Download : 7
005. 음악은 농사


오늘은 조금 진지하고 민감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민감한 이야기라서 예방차원으로(?) 존댓말로 이야기를 풀어갈까합니다.

예전부터 종종 메일 또는 방명록 또는 쪽지로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프로로서) 음악을 해도 될까요? 실제로 하면서 어떠세요?'

여기서 '어떠세요'는
음악을 하며 느끼는 쾌감 등을 묻는 게 아니고 경제적인 면을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뭐 사실 따지고보면 쾌감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만)
100% 제 이야기일 수 밖에 없어서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일단 제일 먼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음악을 할지 말지 정하는 것은 당신 안에 있기도 하지만 당신 바깥에 있기도 하다]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당신의 음악을 원하는 사람이 있어야, 사주는 사람이 있어야
당신이 음악을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취미생활이 아닌, 프로로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음악가, 작가, 미술가 등등에게 모두 적용되지만
사실 잘 강조되지 않는 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너무 당연해서인지, 눈가리고 아웅하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압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밑에서 자세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잠시 들겠습니다.

나는 화가입니다. 정말 순수하게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그런데 왜 내 그림을 아무도 안사는거야?

사람들이 무식해서?
그림을 몰라서?
내 천재성이 너무 시대를 앞서가서?
너무 난해해서?

그럴 확률도 물론 있겠지만...어쩌면
[그냥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일 수도 있지요.
그건 내가 연습부족으로 테크닉이 모자라서 일수도 있고
내 모든걸 표현했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그건 스스로에 대한 거짓말로,
내 깊은 내면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또 내 한계를 깨지 못하고,
그저 그럴듯한 그림만 그려내어
사람들이 오히려 그걸 꿰뚫어보고 '흠 이건 그냥 그러네' 하고
보는 이의 마음에 닿지 못하고 슥 넘어가게 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순수하게'라는 말은 무서운 말입니다. 순수함은 면죄부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순수함은 매우 중요하고 훌륭한 미덕이지만, 결과물에 있어서 그 자체로 100%가 될 수는 없습니다.
순수함외에도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완성도.
완성도가 낮다면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을것이고
음악이 얼마나 하고 싶은지와는 관계 없이
당신의 음악을 아무도 원하지 않으면 프로로서 지속해나갈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이런 질문이 되돌아오곤 합니다.
'그럼 순수성이 해쳐지지 않나요?'

거기에 대한 제 답은 이렇습니다.
이런 걸 만들면 대박칠꺼야....를 먼저 앞에 두고 음악을 만드는 영역이 있습니다.
요즘 외국에 유행하는 씨디를 몇장 들과 와서 짜집기를 한다던가,
순수성보다 세일즈가 먼저 오는 영역입니다.
물론 불만 없습니다. 그 영역의 음악도 좋아합니다.

어쩔 수 없이 제 경우로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제 경우에는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어떤 음악 외적인 생각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들어올 수 없고, 또는 들어오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조금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 때부터 귀신같이 사람들이 그 냄새를 맡을까봐.
그래서 내 음악을 들은 누군가가 '아 이 음악은 뭔가를(돈이든 뽀대든) 노리고 만들었구나'
하고 생각한다면 난 정말 쪽팔려 죽을꺼야.
뭐 언젠가는 유희적인, 좀 덜 심각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도 생각하지만,
제 음악의 몸통은 결국 그런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일즈를 염두에 두고 음악을 만들지 않고,
현재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음악, 현재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
현재 자신의 능력의 한계치에 다다른 음악, 또는 그 수치를 돌파하는 음악,
........을 하면 세일즈도 따라오지 않을까?
하고 철없게 생각하고 있고 계속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낭만파로, 철없는 사람으로 지내고 싶습니다.
나 뭐 우주인 아니니까, 지구인이니까 누군가에게는 공감가는 가사와 음색과 멜로디의 음악을 하고 있을테고
단지 그 수의 차이가 아닌가, 그러니까 내 음악을 좋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내가 얼마나 잘 하느냐, 어느 영역까지 갈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들이 적게 또는 많게 반응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언제나 좋은 음악을 찾고 있고 듣고 싶어 하고 있고
내 음악이 만약 좋은 음악이라면 접하는 사람 중 얼마는 알아줄꺼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리스너를 포기하는 발언은 싫어요. 좋은 음악을 해도 사람들이 안 알아준다던가
그런 말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 또한 한 명의 리스너로서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고로 음악을 할까 말까를 결심하는 순간에서
'아 음악을 하면 경제적으로 곤란해질텐데...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내가 음악에 과연 뛰어들어도 되는가!'
하는 '비장함'보다는

자신이 어떤 음악을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고,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는 어떤 것이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고
그 음악은 남들에게 어떻게 들리고 (친한 친구부터 들려줘 보는 것도 좋겠지요)
과연 그 음악이 비틀즈의 앨범과 같은 가격에 팔려도 되는지,
천천히 잘, 때론 잔인할 정도로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이야기라는 부분이 많이 중요합니다.
테크닉적으로 엄청 발전해서 예를 들어 속주의 달인이라고 해도
유튜브 스타는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것과는 또 거리가 멀어서,
처음부터 '난 세션이 될꺼야!'하는 마음이 아니라면
테크닉 외에도 '자기 이야기' '자기 음악'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음악을 해야겠다 -> 관련 학교에 들어가야지
로 100% 이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관련 학교의 좋은 점도 산처럼 많습니다.
그냥 '안 들어간다고 못하는 거 아니다'라는 뜻이지요.

'음악을 해도 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길고 길게 썼지만
제가 내리고 싶은 궁극적인 답은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고 , 인생이 있고, 선율이 있으니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음악을 할 권리(?) 또는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입니다.

그리고 이건 사족이지만
직업적 전망을 묻는다면...
요즘은 뭐 철밥통 공무원빼고는 모든 직업이 다 불안하지 않나?
...가 저의 대답입니다. 허허...거 참...


그럼 '인디로 생활하는게 어떤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
결국 앞에 했던 이야기의 변주가 될 듯 합니다만.

음악인에게는 이상한 판타지가 적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가난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순수한 예술인.

이 문장이 종종 뒤집혀서
순수를 증명하는 키워드로 '가난'이랑 '싸우다'가 사용되기도 합니다.  
순수하면 가난해지나? 하고 싶은 음악을 하려면 꼭 싸워야 하나?
하고 저는 또 울컥하곤 합니다. 허허 허허허 허허허.

좀 더 울컥해보자면,

'하고 싶은 음악'은 듣기 좋지 않나? '하고 싶은 음악'은 많이 팔릴 수 없나?
천만장 넘게 판 당신들의 음악 히어로들은(비틀즈부터 너바나 오아시스까지) 하기 싫은 음악 했을까?
당신의 하고 싶은 음악이란건 노이즈 음악이라도 되나? (노이즈의 경우라면 기금을 노리세요)
가사 있고 멜로디 있는 음악, 결국 팝 아닌가?

헉헉헉.

저는 '음악을 만들어서'
그걸 '씨디로 만들고'
듣고 좋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제게
'대가를 지불해서'
'씨디를 사서'
'음악을 듣는'
그 과정이 너무 좋습니다.
농사를 지어본 적은 없지만 마치 농부가 된 기분입니다.

'농사를 지어서'
'수확을 해서'
시장에 나온 누군가가 나에게
'대가를 지불해서'
'농작물을 사서'
'요리하여 먹는'
그런 과정.

단순하고도 직접적이고도 또 순결한 경제활동.

이윤만 생각해서 대기업이랑 계약 맺고 납품가 맞추려다보니 대량생산해야하여
농약 팍팍 치면서 먹어도 아무 맛 없는 그런 채소를 만드는 농부와

세세하게 신경쓰다보니 소규모지만
무농약에 맛도 진한 내 자부심이 담긴 채소를 만드는 농부.

후자의 농부는 굶어죽기 십상이라 취급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백화점 지하에서 4배 가격받고 팔 수 있는 시대니까.
그도 계속 농사를 이어갈 수 있고,
먹는 사람도 그 맛에 만족할 수 있고.

'가난해서' '인디'도 아니고, '홍대라서' '인디'도 아니고, '퀄리티가 낮아서' '인디'도 아니고.
'괴상해서' '인디'도 아니고, '감상적이어서' '인디'도 아니고.
'인디펜던트' 하기 때문에 '인디'입니다.

채소가 맛이 있다면 단골도 생기고, 먼데서 차타고 사러 오기도 할테죠.
물론 좋은 거 수확했다고 넋놓고 있으면 안되고,
어떻게 해야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고민은 할테야.
비슷한 농부들끼리 연합을 만든다던가...
하다못해 블로그라도 만들어서 채소 접사라도 찍어서 올려두시던가...

뭐 여튼 인디뮤지션으로서의 생활이 어떠냐 물으신다면
고마우신 소비자님들 덕분에 먹고 자는데에 불편함은 없으며
가끔 팔자 좋게 여행도 다니고
그러면서 또 인생은 계속 흘러흘러가니까
어떤 차오르는 순간이 노래가 되기도 하고
어떤 침잠하는 순간이 노래가 되기도 하고
어떤 깃털같은 순간이 노래가 되기도 하고
그런 노래가 모이면 앨범을 구상하고
그게 어떻게 해야 퀄리티가 제일 높고, 가장 노래 자체가 있어야 할 모습에 가까울지
이게 내 한계인지, 변명인지, 더 나아갈 수 있는지 계속 스스로를 의심하며
편곡하고 합주하고 녹음하여
앨범으로 만들어 내는 그런 과정을
계속 반복해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디펜던트하게.
시스템적 인디펜던트 보다는 내 자신의 인디펜던트가 더 중요.
회사랑 손을 잡는다고 해도 내가 독립적이라면
내가 계속 나로 있을 수 있다면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지켜낼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명분에게 잡아먹히고 싶지 않으니까.

글이 그다지 정리되지 않은 것 같지만
전해질 건 전부 전해졌다고 봐요! 캬 무책임하다!

그럼 음악을 좋아하는 것에 더 나아가서
하고 싶은 것에 더 나아가서
안 할수가 없어 몸부림치는 여러분들.
마음껏 고민하시고, 스스로에게 잔뜩 가혹해지시고
멋진 음악 많이 만드시기 바랍니다.
전 이런 말 할 주제가 안 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엔딩멘트다 보니 뭐 이런 풍으로 끝내겠습니다. 후후.

그리고 이제 이 질문은 하지마세요!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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