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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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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꿈




꿈이 뭐냐는 질문도 종종 듣고
꿈을 이뤄서 좋겠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두 질문 다 성실하게 대답하고 싶지만
성실한 대답은 잘 안나오고 갸우뚱대서 죄송해진다.

그건 사실 난 딱히 꿈이랄께 없고 (없었고)
꿈을 이뤘다! 하는 느낌 또한 없기 때문이다.

아. 최근에
내 입에서 먼저 '나의 꿈'에 대해서 말 한 적이 있었다.
'제 꿈은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들한테 세션비 많이 드리며 세션 부탁하는겁니다!'
라고 열혈하게 얘기했더니 내가 굽신대고픈 뮤지션분들이 눈을 반짝여주시는
기대이상의 호응을 보여주시어 왠지 안심했던 겨울밤의 기억.

그런데 이게 영 닿을 수 없는 그 무언가도 아니고...
독하게 마음 먹으면 또는 운이 좋으면 조만간 이룰수도 있고.
그럼 결국 꿈이라고 하긴 그렇지 않나.

이제까지 한번도 '아! 음악이 하고 싶다!' 하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기타를 원하기도 전에 이미 기타가 있었고
(물론 더이상 치면 손목이나 넥이나 둘 중에 하날 부러뜨린다는 말을 들었지만)
무대를 원하기도 전에 이미 무대가 있었고
(그게 교실 앞이든 아님 홍대의 클럽이든)

오히려 프레셔를 일찍 배웠다.
삑사리도 나면 안되고, 따라해서도 안되고, 가사도 써보라고 하고 악 구찮게스리.
즐겁게 뭐든 해볼시기는 그다지 없었고, 처음부터 굉장히 잘해야만 했다.
당시 카피하던 밴드들 창법을 따라하면
언니들이 무서운 눈으로 '넌 남을 따라하는 창법이 옳다고 생각하니'라고 매섭게 물어봤다.
중3한테...다들 너무해...
(되바라진 나는 '일류 프로듀서가 프로듀싱한 결과와 노하우를 배우는게
뭐가 나빠요 흥'하고 응수했다 재수없던 나)
남들이 강요했다기보다는 내가 눈치가 빠른 애였여서
공기를 읽고 이거 놀이터가 아니잖아...하고 빨리 깨달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쓸모없는 능력이다.

오히려 내가 스스로에게 제일 많이 물었던 질문은
'나는 대체 왜 음악을 한다고 이러고 있는가. 그닥 즐겁지도 않은데' 였다.
(답은 : 안하면 어색해서. 입니다. 부끄럽게도 10년 걸려 찾은 답이예요)

즐거운건
자는거. 책읽는거. 빈둥대는거.
에이 음악은 글쎄.

물론 좋은 음악을 들으면 '와 이거 환장하겠다'하는건 있었지만
그건 새삼스러울것도 없는 아주 어릴때부터 계속되는 경험.

가지고 싶고 다다르고 싶은 무언가가 아니고
이미 내 손안에서 타고 있는 뜨겁고 부담스럽고 뭔지 모를 무서운거.
꺼트려서도 안되는 불, 자칫 잘못하면 내가 전부 타버릴지도 모르는 무서운 불.

그래서 그 불을 잘 다룰 수 있게 되는 시기가 올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장을 찍지 않고
(도장은 지금도 찍고 있지 않지만)

아 맞다 꿈이야기 하고 있었지.

응 그래서 나는 음악=꿈인 공식은 잘 모르겠다. 미안합니다.
음악해서 햄볶아요 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음악을 하지 않으면 억수로 불행할 것이라는 건 안다.
그렇다고 뒤집어서 '해서 행복하다' 고건 아니다.
끝까지 우기고 있는 나다.
결국 이게 결국 행복이고 꿈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20대니까 조금 더 우기겠습니다.

아 다른 꿈은
핀란드의 저 위에 로바니에미에서
또는 로바니에미보다 더 북쪽의 어딘가에서
오로라를 보는것이다.
어디 유스호스텔같은데 일주일정도 예약해서
그 전에 까르푸같은데서 비상식량 일주일치 사서
하루종일 코코아나 타먹으며 미친듯이 심심해하며
숙소에서 오로라를 기다리며 있고 싶다.
숙소에 있을 나같이 얼빠진 애들이랑 더듬더듬 말이나 나누며.
분명 막상 가면 그냥 그렇겠지만
그래도 20대 안에 이루고 싶은 꿈.  

그럼 누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핀란드에서 오로라를 보는거예요! 하고 대답하면 되는건가
너무...밝고 귀여워서 용서할 수 없는데.
스스로에게 그런 걸 허락할 순 없지

역시 그냥 없다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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